영남연합포커스 김진우 기자
-현실적 시각으로 본 개선 과제-
정부가 추진 중인 ‘정보공개법’ 개정 논의가 다시금 속도를 내면서, 투명한 행정이라는 가치와 공무 현장의 현실적 부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논쟁이 뜨겁다. 정보공개 제도는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언론 보도와 각 기관의 내부 문제 제기에서 확인되듯, 제도 운영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한계와 공무원의 과도한 부담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보공개청구의 급증과 청구 범위의 과도한 확장, 그리고 판례 중심의 지나치게 세밀해진 공개 기준은 ‘투명성 강화’라는 명분 아래 공무원에게 사실상 이중·삼중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정부와 국회가 논의 중인 개정 방향은 ‘책임성·투명성·업무 현실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청구 건수 급증… “한 사람이 수백 건 청구하는 경우도”
행정안전부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정보공개 청구는 연평균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일부 기관에서는 하루 수백 건, 한 개인이 수십~수백 회 반복적으로 특정 부서를 겨냥해 청구하는 사례도 확인된다.
한 지방 공무원은 이렇게 토로했다.
“정보공개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영리 목적이나 단순 민원 압박 수단으로 하루에도 수십 건을 넣으면, 정상적인 행정업무는 마비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정보공개의 남용’이라고 부르지만, 현재 법 체계상 이를 제도적으로 제어할 장치가 거의 없다. 지나치게 반복·과도한 청구가 있을 때 기관이 대응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점은 현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불만이다.
“부분공개 중심 원칙은 맞지만… 실무에선 사실상 전면 공개 압박”
정보공개법은 원칙적으로 ‘부분공개’를 우선하며, 비공개 사유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이 현실에서는 ‘전면 공개 압박’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 실무자들은 특정 문서의 일부라도 공개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해당 문서를 구성하는 모든 세부 내용을 하나하나 검토해야 한다. 복잡한 회의록, 수백 쪽의 사업보고서 등은 사실상 한 명의 실무자가 며칠을 매달려야 한다.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공개 사유가 되는 개인정보나 영업비밀을 일일이 삭제하는 작업이 전체 업무의 60~70%를 차지할 때도 있습니다. 다른 정책 업무는 손도 못 댈 정도입니다.”
결과적으로 정보공개 제도는 ‘과도한 행정에너지 소모’라는 비판을 받는다. 투명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대표적 사례다.
판례 중심의 공개·비공개 기준… “실무자 책임만 커지는 구조”
정보공개 판단에 있어 법원 판례가 사실상 기준으로 작동하는 것도 공무원들이 지적하는 주요 문제다. 판례는 구체적 사건마다 달리 적용되기 때문에, 한 기관의 동일한 정보라도 해석 차이에 따라 공개 여부가 달라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현장의 불만은 명확하다.
“판례가 너무 많아 실무자가 일일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동일한 정보인데도 ‘공개가 맞다’는 해석과 ‘비공개가 맞다’는 해석이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책임은 실무자에게 돌아옵니다.”
과감하게 말하면, 정보공개 제도는 실무자의 재량을 넓혀준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증가시킨 제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는 실무자 개인에게 부담과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켜 ‘기피 업무 1순위’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공무원 인권·안전 이슈도 등장… “악성 민원과 결합하면 위험 증가”
최근에는 정보공개 청구가 악성·보복성 민원과 결합할 때 공무원 개인의 안전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특정 공무원의 이름, 직위, 소속 등을 반복적으로 요청하여 부정적 이슈를 만들어내려는 사례도 있어, 정보공개법 적용 과정에서 필요한 보호장치가 약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또한 일부 기관에서는 정보공개 청구를 빌미로 실무자에게 폭언‧협박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공무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제도의 취지를 유지하는 균형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개선 방향은?… “투명성 저해 없이 현실적 기준 정비해야”
현재 정부는 정보공개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 중이다.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 청구 남용 방지 장치 도입
반복적·도배성 청구에 대한 제한 규정 신설, 청구 목적 불명확 청구에 대한 보완 요구 절차 도입 등이 논의되고 있다.
② 기관 간 공개 기준 통일화
판례 중심의 복잡한 기준을 단순화하고, 기관 공동 매뉴얼을 마련해 실무자 판단 부담을 낮추는 방안이다.
③ 개인정보·공무원 보호 장치 강화
공무원 개인에 대한 공격적 청구를 제한하는 규정, 직무상 생성 정보의 구체적 공개 범위 명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는 “투명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국민의 알 권리와 공무의 효율성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가치”라고 설명한다.
투명성은 강화해야 하지만… “제도의 지속 가능성도 고민해야”
정보공개법은 분명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제도 설계가 국민의 권리 확대에 집중된 나머지, 공무현장에서의 실질적 부담과 업무 왜곡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타당하다.
특히 “투명성이 행정의 신뢰를 높인다”는 가치와 “행정의 효율이 곧 국민 편익으로 이어진다”는 원칙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도 운영에 현실적 조정이 필요하다.
현장 공무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정보공개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제도가 지속 가능하려면 현장의 목소리도 함께 반영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공무원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제도의 동반자로 대우하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투명성과 신뢰의 시대, ‘조화의 행정’이 답이다
정보공개법 개정 논의는 단순히 법 조항 몇 개를 고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무원의 직무 수행권,
민주적 감시와 행정 효율성,
투명성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두 축이 충돌하는 복합적 정책 영역이다.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개의 원칙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그러나 행정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도가 현장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도록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정보공개법의 개선이
투명한 국가, 효율적 행정, 존중받는 공무환경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제도는 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