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연합포커스 김진우 기자
축산항을 찾는 관광객 상당수는 한결같이 물가자미의 담백한 맛에 고개를 끄덕인다. 계절을 타지 않는 식재료, 과하지 않은 조리, 그리고 바다를 닮은 소박한 손맛은 이 항구가 오랫동안 지켜온 정체성이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이 축산항을
조명하면서 이러한 매력은 다시 한 번 전국에 소개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방송이 정식으로 전파를 타기도 전, 일부 온라인 플랫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마치 해당 프로그램에 특정 상점이 출연한 것처럼 오인될 수 있는 홍보 게시물이 확산됐다. 실제 방송에는 상호가 명시되지 않았음에도, 시청자와 소비자가 혼동할 수 있는 방식의 홍보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를 수상히 여긴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으나, 결과는 ‘혐의 없음’이었다.
법의 판단은 명확하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는 처벌이 어렵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법적 판단과 별개로, 이 사안을 바라보는 지역 상권 내부의 시선은 복잡하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홍보 방식이 개별 상점의 단독 행동이라기보다, 프로그램 노출 효과를 노린 대행 마케팅이나 관행적 작업의 연장선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방송과 SNS, 플랫폼 홍보가 결합된 구조 속에서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위법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지역 상권을 지탱해온 상도덕과 신뢰의 문제다. 방송 프로그램이 상호를 명시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특정 업소에 대한 광고나 편파 논란을 피하고, 지역 전체의 매력을 소개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이 구조적 장치가 역설적으로 ‘오해의 틈’을 만들고, 이를 영업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전체로 돌아온다.
축산항에는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식당들이 있다. 화려한 홍보 없이도 손맛 하나로 버텨온 곳들이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태화식당의 ‘엄니 손맛’을 이 지역 미식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 글은 특정 가게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최고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함께 가는가’다.
지역 상권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한 가게가 방송 효과를 독점하고, 다른 가게들이 소외되는 구조가 반복되면 결국 신뢰는 무너진다. 관광객은 한두 번의 방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정성 없는 홍보, 과장된 이미지, 사실과 다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되돌아온다. 그 실망은 특정 상점이 아닌 ‘축산항’이라는 이름 전체에 덧씌워진다.
방송 제작 시스템의 허점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상호 비노출이라는 원칙은 공정성을 위한 장치이지만, 사후 관리나 왜곡 홍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은 미흡하다. 방송 직후, 혹은 방송 전후로 벌어지는 온라인 홍보 경쟁을 어디까지 자율에 맡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이는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과 지역사회, 그리고 상인 스스로의 책임이 함께 요구되는 영역이다.
법은 최소한의 기준이다. 법을 피해 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상도덕은 법 이전에 존재하는 지역 공동체의 약속이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상권을 지배하는 순간, 그 지역의 브랜드 가치는 서서히 잠식된다. 반대로,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함께 신뢰를 쌓아갈 때, 방송 한 번보다 더 오래가는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축산항은 맛으로 기억되는 곳이어야 한다. 홍보 기술이 아니라, 손맛과 정직함으로 다시 찾게 되는 항구여야 한다. 방송의 빛 뒤에 드리운 그림자를 외면하지 말고,
지금 이 논란을 상권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지역을 살리는 길은 결국, 상도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