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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이 된 의회, 무너진 신뢰…영천시의회는 시민 앞에 무엇을 남겼나

영남연합포커스 김진우 기자 


말과 행동의 경계가 무너진 의회는 더 이상 공론의 장이 아니다. 최근 영천시의회에서 벌어진 막말과 몸싸움, 그리고 그에 따른 의원 제명·출석정지 논란은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회의장은 토론의 공간이 아닌 감정의 격전지로 변했고, 시민의 대표여야 할 의원들은 스스로 품위를 내려놓았다.

사건의 발단은 예산 심의와 관련한 의견 충돌이었다. 그러나 정책과 논리로 풀어야 할 갈등은 고성과 비난, 신체적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의회 회의장에서 오간 표현들은 시민의 눈높이에서 결코 용납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물리적 충돌은 ‘민주적 절차’라는 지방의회의 존재 이유를 근본부터 흔들었다.

의회의 파행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지방의회는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시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을 심의·감시하는 기관이다. 그 공간에서 벌어진 막말과 몸싸움은 시민 모두에게 가해진 모욕과 다름없다. “회의장을 아이들 싸움터로 만들었다”는 시민들의 냉소가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다.

문제는 사건 이후의 대응이다. 일부 의원에 대한 징계 절차가 논의됐지만, 그 과정 또한 논란을 낳았다. 징계의 형평성, 책임의 무게, 재발 방지 대책을 두고 시민사회에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처벌이 ‘보여주기식’에 그친다면 의회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집단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싸움은 있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다. 공개 사과는 형식적이었고, 사건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다. 누구도 시민 앞에서 고개 숙여 설명하지 않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제도 개선안도 뚜렷이 제시되지 않았다.

지방의회의 권한은 결코 가볍지 않다. 조례 제·개정, 예산 심의, 집행부 견제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 권한은 시민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신뢰의 토대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신뢰가 무너진 의회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시민의 시선은 냉정하다. 지역 현안은 산적해 있고, 민생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의회는 내부 다툼에 매몰돼 본연의 책무를 잊었다. 시민들은 묻는다. “우리가 뽑은 대표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 큰 문제는 ‘관행화’의 위험이다. 막말과 고성이 반복되고, 충돌이 일상화된다면 의회는 스스로를 통제할 능력을 상실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정책은 지연되고, 행정 견제는 약화되며, 지역 발전은 뒷전으로 밀린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첫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사실 정리와 책임 규명이다. 둘째, 징계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다. 셋째,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 제도 개선이다. 윤리 규정의 실효성을 높이고, 회의 질서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의 변화다. 의원 개개인이 ‘권력자’가 아니라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새겨야 한다. 의회는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뜻을 모아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공적 무대다.

이번 사태는 영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자치 전반에 던지는 경고다. 지방의회가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시민의 신뢰는 더 빠르게 이탈할 것이다. 신뢰를 잃은 의회는 존재하되 기능하지 못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시민들은 더 이상 변명과 책임 회피를 원하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사과, 명확한 책임, 그리고 달라진 모습이다. 의회가 다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실망으로 기록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방자치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으로 완성된다. 그 사람들이 시민의 눈높이를 외면하는 순간, 의회는 스스로 설 자리를 잃는다. 영천시의회가 이번 사태를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다시 서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시민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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