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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언어가 지배하는 지역, 법은 왜 침묵하는가

‘갑질’이라는 이름의 일상화된 폭력에 대하여

영남연합포커스 김진우 기자 

 

지역에서 독하게 싸워왔다. 때로는 무식했고, 법을 돌아보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선택들이 부끄럽고, 반성도 한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완전히 헛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싸움의 이유는 언제나 같았기 때문이다. 힘없는 이들이 늘 뒤로 밀려나는 구조, 눈치를 보며 침묵하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힘의 언어’였다.

 

문제는 개인의 성정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구조다. 지역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갑질’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다. 회장이라는 직함, 대표라는 명함,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쌓인 관계망이 어느새 권력이 되고, 그 권력은 법과 제도를 우회하며 작동한다. “다 그렇게 해왔다”는 말은 면죄부가 되고, “괜히 문제 만들지 말라”는 충고는 침묵을 강요하는 규칙이 된다.

 

기회만 있으면 공격하려 드는 태도, 말 한마디로 상대의 생계를 흔드는 언행, 공공의 영역을 사유물처럼 다루는 관행은 더 이상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상습적 폭력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행태는 사라지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맞설 힘이 없는 이들이 바보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법은 존재한다. 제도도 있다. 그러나 법은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신고를 해야 움직이고, 증거를 요구하며, 피해자는 늘 ‘왜 이제야 말하느냐’는 질문을 먼저 받는다. 지역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그 질문은 곧 보복의 신호로 읽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택한다. 참는 것, 웃어넘기는 것, 그리고 잊는 척하는 것을. 그 순간, 가해는 강화되고 피해는 고립된다.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착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해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인 양 행동하는 태도, 공공의 질서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은 주변의 침묵을 먹고 자란다. 침묵은 공범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침묵이 권력을 연장시키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침묵한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과 일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고발이 아니라 질문이다. 왜 지역에서는 유독 법이 늦게 도착하는가. 왜 힘을 가진 사람의 언행은 ‘성격’으로 포장되고, 힘없는 사람의 항의는 ‘문제 제기’로 낙인찍히는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 피해를 ‘개인의 운’으로 환원시키는가.

 

반성은 필요하다. 싸움의 방식이 거칠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반성이 투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구조를 지적하는 일, 권력의 사유화를 거부하는 일은 여전히 정당하다. 다만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감정의 돌파가 아니라 기록과 절차, 연대와 공개의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역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다. 제 역할을 하는 제도,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안전망, 그리고 ‘갑질’을 미담이나 관행으로 포장하지 않는 상식이다. 회장이라는 직함은 지배의 권리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여야 한다. 오래 있었다는 이유는 면책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법이 있다면, 법답게 작동해야 한다. 힘없는 이들이 바보가 되지 않는 지역,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질문을 허용하는 문화, 불편한 진실을 기록하는 언론, 그리고 침묵 대신 절차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쌓일 때 가능하다.

 

독하게 싸웠던 시간은 끝나야 한다. 그러나 싸움의 이유까지 끝낼 수는 없다. 그것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갑질이 일상이 되지 않는 지역, 힘의 언어가 아니라 법의 언어가 통하는 지역을 위해, 이제는 덜 소리치고 더 정확하게 말해야 할 때다. 침묵이 미덕이 되는 순간, 법은 가장 먼저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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