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연합포커스 김진우기자
정부가 최근 발표한 중앙부처 야간당직 제도 폐지 결정은 단순한 근무방식 조정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던 한국식 상시대기 행정문화에 대한 구조적 해체이자, 국가 위기 대응 체계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정책적 분수령이다. “밤에 사람을 남겨두는 것이 곧 책임”이라는 전근대적 인식을 걷어내고, 스마트 행정·책임형 행정·집중형 근무로 전환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드러나는 동시에, 공백 우려와 반발도 동반된다. 이번 조치는 행정혁신의 시작인지, 공백행정의 위험인지, 그 답은 향후 시스템 구축의 완성도에 달려 있다.
*야간당직, 시대에 뒤처진 관행… 명목만 유지한 ‘형식 행정’
야간당직은 과거 유선전화 중심의 행정 환경에서 필요성이 명확했다. 국가적 비상 상황, 재난 발생, 긴급 민원 등을 처리하기 위해 현장에 대기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그러나 2024년 기준, 중앙부처의 야간당직 실무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실질 업무 부재: 대부분의 부처에서 야간 시간대 민원·보고 건수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준.
대기 중심의 피로 구조: 실무 공무원들이 밤새 대기 후 오전 정상근무까지 수행하며 지속적 피로 누적.
형식적 유지: “부처 건물을 밤에 비워둘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음.
디지털 행정환경과의 불일치: 비상연락망·보고체계는 이미 모바일화·앱 기반으로 전환됨.
즉, 제도의 본래 목적이 사라졌음에도 관행적으로 유지된 대표적 ‘구조적 낭비’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특히 공무원단체들은 야간당직을 “가장 비효율적이고 피로도가 높은 관행”으로 규정하며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해 왔다.
*정부가 폐지를 선택한 이유: “업무는 주간 중심으로, 위기 대응은 ICT 기반으로”
이번 폐지 결정의 핵심은 ‘행정의 주간 집중도 강화’와 ‘야간 비상 대응 시스템의 고도화’라는 두 축이다.
*주간 업무의 질 향상 추진
정부는 “야간의 무의미한 대기를 없애고 낮 시간대에 행정역량을 집중시켜 정책성과를 높이겠다”고 밝혔다.이는 보고·현안협의·정책 기획 등이 대부분 주간에 이뤄지는 행정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ICT 기반 비상대응 체계 구축
야간 시간의 비상상황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대응하게 된다.
장관 및 실·국장급 책임자 중심의 즉시 호출 체계
모바일·메신저 기반의 24시간 보고 시스템
부처 간 비상 연락 체계의 디지털 통합 관리
기존의 ‘현장 잔류 1~2명’ 방식보다 오히려 더 즉각적이고 책임 있는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 야간 보고·민원량은 얼마나 되나
중앙부처의 실 기록을 기반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대부분의 중앙부처에서 야간 민원 접수는 월 0~2건 수준
주요 재난 보고는 이미 재난안전통신망·자동 알림 시스템으로 자동 전송
다수 부처는 야간 당직자가 “새벽 한 번도 민원 전화가 울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증언
보고 지연 사례는 야간당직자가 아닌 부처 간 책임자 연결 지연에서 발생한 사례가 더 많았음
즉, 현재의 시스템은 ‘사람이 건물 안에 있는 것’이 실제 위기대응과 거의 무관한 구조임이 이미 확인된 셈이다.
*제도 폐지에 따른 우려: 공백 행정의 리스크는 없는가?
야간당직 폐지가 긍정적인 변화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공백 가능성에 대한 전문적 검증과 통제 장치 없이 추진될 경우, 다음과 같은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1) 초단기 대응 지연 가능성
스마트폰 호출 체계가 비상 상황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특히 통신 장애·시스템 오류 발생 시 대응 체계가 얼마나 작동할지가 관건이다.
2) 전문성 인력의 즉각회신 부담 증가
밤새 현장에 대기하던 실무자 대신 간부급이 직접 호출되면서‘실질적 업무 부담’이 특정 간부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3) 부처 간 협조 체계 지연 가능성
야간대응은 담당 인력 1명이 아니라부처 간 연속적 보고·협업 구조가 핵심이다.이 체계가 실제로 얼마나 기민하게 작동할지 점검이 필요하다.
*국제 비교: 한국식 ‘24시간 대기’는 이례적 구조
OECD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행정부는 다음과 같은 구조다.
주간 중심 업무
야간은 비상센터·콜센터·전문 기관 중심 대응
각 부처는 책임자 비상연락 체계만 유지
일반 실무자가 건물에 잔류하는 방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음
즉, 한국식 야간당직은 국제 기준에서 보면 매우 독특하고 과도한 인력 낭비형 제도라는 점이 팩트로 확인된다.
*정책의 확대 가능성: 지방정부·공공기관으로 확산될까
중앙부처가 야간당직을 공식 폐지할 경우, 다음 기관으로의 파급 효과도 예상된다.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준정부기관,산하기관, 공사·공단
특히 지자체의 경우 민원·재난대응 기능이 중앙보다 직접적이기 때문에,중앙부처의 폐지 결정이 “지자체는 왜 유지하나”라는 논란을 촉발할 가능성도 높다.
*핵심 쟁점: ‘폐지’가 아니라 ‘대체 체계의 완성도가 관건’
모중앙지는 이 문제의 핵심이 “야간당직 폐지 여부”가 아니라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있다고 판단한다.제도를 없애는 것은 쉽지만, 국가 위기대응 체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핵심 검증 포인트는 다음 세 가지다.
24시간 즉시보고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문제없이 작동할 것인가?
부처 간 비상 지휘체계가 기존보다 더 기민해질 것인가?
간부급 호출 체계가 새로운 부담 구조를 낳지 않을 것인가?
이 세 가지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도 폐지의 명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론: 관행적 야간당직의 폐지는 타당… 그러나 ‘전환 행정’의 설계가 성패를 좌우한다
야간당직 제도의 폐지는한국 행정이 오랜 기간 붙잡혀 온 전근대적 상시대기 문화의 해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지나치게 체력 소모적인 근무 체계를 없애고,주간 중심의 집중형 행정·책임형 행정으로 전환하려는 목적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제도가 사라지는 순간은 개혁의 시작일 뿐, 본질은 ‘대체 시스템의 완성도’에 있다.24시간 국가 대응 체계가 실제로 빈틈없이 설계되고 작동할 때,비로소 이번 제도 폐지는 ‘행정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중앙행정이 밤새 사람을 남겨두는 행정에서 벗어나,밤에도 책임자는 깨어 있고 시스템은 작동하는 진정한 스마트 행정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이번 결정의 진짜 성패는 앞으로의 시스템 구축에 달려 있다
